거대 성기를 가졌었다는 역사 속 남성 5 명 [issue:tracker-story]

2022. 8. 24. 06:56[§Story:Tracker]/¶Surprise Story(알면소름돋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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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왕은 한 자 다섯 치(약 40cm)나 되는 남근의 소유자였다.

성기 크기가 성관계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기술'이, 어떤 이는 '사이즈'가 최고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기술은 연마가 가능해도, 크기는 선천적이라 어찌할 수 없다.

사람들이 큰 물건을 동경하는 경향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과거 남성중심사회에서 지도자의 성기 크기는 권력과 같았다. 따라서 일부로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훌륭한 사람일수록 컸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미신에 불과하다.

거대 성기를 지녔었다는 역사 속 인물 5명을 소개한다.

1. 지증왕(437~514)

KBS '역사스페셜'

 

신라 제 22대 왕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지증왕은 한 자 다섯 치(약 40cm)나 되는 남근의 소유자였다. 신붓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한 신하가 적합한 베필을 소개했는데, 이 여성은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약 220cm)에 달했다. 모든게 다 큰(?) 여성이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당대 학자들이 지증왕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성기 크기를 과장했다고 보고있다.

2. 노애(?~기원전 238년)

 

 

춘추전국시대 말기 진나라 사람이다. 환관이었지만, 꾀를 내 거세를 피한 뒤 시황제(진시황) 영정의 생모 조희와 내통했다.

사서에 따르면 노애는 크고 단단한 성기를 갖고 있었다. 발기한 성기로 오동나무를 꽂은 수레바퀴를 빙글빙글 돌렸다고 한다.

노애는 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영정에게 처형당했다.

3. 라스푸틴(1869~1916)

 
 Wikipedia
실제 라스푸틴 남근

 

제정 러시아의 괴승으로 빈농 출신이다. 35살에 '편신교'라는 종교에 가입, 전국을 순례하며 농민들에게 '성자'라고 불렸다.

라스푸틴의 명성이 높아지자, 러시아 왕궁도 그를 주목했다.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이 앓던 혈우병(피가 안 굳는 병)을 고쳐 왕가의 신임을 얻었다.

행실이 불량했으며 수도승으로 명성을 얻어 그 것을 빌미로 귀부인들과 러시아를 통째로 뒤흔들었던 인물이다.

라스푸틴은 거대한 성기로 유명했다. 발기하지 않고도 30cm가 넘었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1916년, 그를 견제한 귀족들에게 살해당했다.

4. 경덕왕(?~765)

신라 제 35대 왕이다. 돈 대신 땅을 월급으로 주는 '녹읍제'를 부활하고, 중앙행정체계를 정비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덕왕의 성기는 8치(약 24cm)였다. 지증왕과 같은 이유로 적절한 짝이 없어 애태웠다고 한다.

하지만 '표훈대덕'이란 스님의 도움으로 후생을 보는데 성공했다.

이 아이가 바로 주색잡기에 능했다는 신라 제 36대 왕 '혜공왕'이다.

5. 카사노바(1725~1798)

 

이탈리아 출신 작가이자 '바람둥이'의 대명사다. 대단한 여성편력가였다.

그의 여성편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유부녀, 귀족, 수녀와 심지어 친딸에게까지 추파를 던졌다고 전해진다.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던 카사노바는 40대 중반 발기부전 등을 앓아 성기능을 상실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거대한 성기의 보유자였다.

다만, 그가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성기가 아닌 여성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지금도 '그것' 의 크기에 대한 집착은 여전할지도,,

issue:tr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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