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지금의 푸틴을 만든 7가지 주요 사건 [issue:tracker]

2022. 10. 11. 07:38[§Story:Tracker]/¶지식투어 (Wikitr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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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GETTY IMAGES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오는 7일 70세 생일을 앞두고 있다. 푸틴은 어쩌다 잔혹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고립된 독재자가 됐을까.

지난 70년간의 인생에서 푸틴의 믿음과 사상을 확립하는 한편 서방 세계와 점점 더 멀어지게 됐던 계기가 된 7가지 주요 사건을 살펴본다.

1964년: 유도(Judo)를 배우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872일간 이어진 포위전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던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푸틴은 확실히 성격이 불같고 호전적인 소년이었다.

당시 푸틴과 친했던 이는 푸틴은 "두려움이 없었기에 누구와도 싸움이 붙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폭력배가 길거리에 넘쳐나는 도시에 사는 작고 볼품없는 소년에겐 뭔가 다른 한 방이 필요했다.

이에 12살에 러시아의 무술인 삼보를 배우기 시작한 푸틴은 곧 유도도 배우기 시작했다. 꾸준히 유도를 연마한 푸틴은 18살이 됐을 무렵 검은 띠까지 올랐으며 전국 주니어 유도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푸틴의 유도 이야기는 훗날 '마초 이미지' 형성에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히 이러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푸틴은 위험한 세계에선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지만 싸움이 불가피할 때는 "먼저 때려야 한다. 그리고 정말 많이 때려서 상대가 일어나지 못할 정도여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1968년: KGB의 문을 두드리다

대개 당시 사람들은 레닌그라드의 리티니 거리 4번지를 꺼렸다. 옛 소련 시절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정치 경찰 본부가 자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스탈린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잡혀 취조당하다 결국 '굴라크'혹은 노동교화소로 끌려갔다. 레닌그라드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던 이곳은 강제로 오게 된 시베리아에서도 건물 1층이 보일 정도라며 "볼쇼이 돔(큰 집)"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16살이 된 푸틴은 건물 안 빨간 카펫이 깔린 리셉션으로 들어가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장교에게 어떻게 하면 KGB 요원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이에 군 복무를 마치거나 학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에 어떤 학위를 따는 게 가장 좋은지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장교의 대답은 법학이었다. 그래서 푸틴은 법학부에 들어가 졸업까지 했으며, 이후 정식으로 KGB 요원으로 발탁됐다.

당시 길거리에서 싸움 좀 잘하는 청년에 불과했던 푸틴에게 KGB는 소련 공산당과 연고가 없어도 안위를 보장받으며 출세할 기회였다.

그리고 KGB의 소속돼 세상을 움직이고 흔들 수 있는 인물로 커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10대 시절 스파이 영화를 보고 크게 감명받은 푸틴은 "스파이 한 명이 수천 명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1971년 반 친구와 레슬링을 하는 푸틴 / 출처 Getty images
 

1989년: 폭도들에 둘러싸이다

부푼 꿈을 안고 입성했지만, 푸틴은 KGB에서 그렇게 빛을 보지 못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진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독일어를 열심히 배워둔 덕에 1985년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KGB 연락사무소로 파견된다.

외국에서 편안한 삶을 즐기고 있던 푸틴의 삶은 1989년 11월 동독 정권이 충격적인 속도로 급속히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큰 변화를 겪는다.

12월 5일 폭도들이 드레스덴의 KGB 건물을 포위했다. 푸틴은 필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소련군 주둔지에 전화를 걸어 보호를 요청했지만, 이들은 무력하게 "러시아 정부의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전달된 명령이 없다"고 말했다.

이때 푸틴은 중앙정부가 갑작스럽게 붕괴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은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달리 반대 세력에 직면하면 신속하고도 결단력 있게 대응하리라고 다짐하게 됐다.

1992년: '식량-석유 교환' 거래 중개

소련이 붕괴하며 푸틴은 KGB를 떠나게 되었지만, 곧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의 신임 시장으로 취임한 개혁주의자의 해결사로 자리 잡는다.

당시 러시아 경제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푸틴은 1억달러(약 1400억원) 가치의 석유와 금속을 식량으로 교환해 시민들을 도우려고 한 거래를 중개했다는 혐의로 기소된다.

하지만 실제론 아무도 식량을 얻지 못했으며, 조사에 따르면 푸틴과 동료, 폭력배들이 재빨리 돈을 챙겼다고 한다.

이렇듯 "야생과도 같았던" 러시아의 90년대 푸틴은 정치적 영향력이야말로 마치 돈처럼 쓸 수 있는 상품이며, 도시 폭력배들은 좋은 동지가 돼줄 수 있다는 점을 빠르게 배웠다.

자신 주변의 모든 이들이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 있는데 자신은 그러질 못할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2008년: 조지아 침공

2000년 러시아의 대통령이 된 푸틴은 자신의 방식으로 서방과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길, 러시아가 옛 소련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길 원했다.

그러나 곧 푸틴은 실망하고 이내 서방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고립시키고 비하한다고 믿으면서 분노에 차기 시작했다.

게다가 접경국인 조지아의 미헤일 사카슈빌리 당시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하자 푸틴은 불같이 화를 냈다.

이에 조지아가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세운 미승인국인 남오세티야를 되찾아오기 위한 군사 행동을 개시하자 이를 핑계로 푸틴은 조지아를 침공했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남오세티야 지역의 한 여성이 전쟁으로 잃은 아들을 애도하고 있는 모습

전쟁 발발 5일 만에 러시아군은 조지아군을 격파하고 사카슈빌리 대통령에게 굴욕스러운 평화 조약을 강요했다.

서방은 러시아에 분노했으나, 그 후 1년 만에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겠다고 제안했으며, 심지어 러시아는 2018년 FIFA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이 일련의 경험은 푸틴에게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더욱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즉, 약하고 변덕스러운 서방 세계가 숨을 씩씩거리며 화를 좀 낼 수도 있지만 의지를 굳힌 채 버티면 결국 물러난다는 것이다.

2011~2013년: 볼로트나야 시위

2011년 총선 결과가 조작됐다는 광범위하고도 신뢰할만한 소식이 퍼지면서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게다가 푸틴이 2012년 또 한 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시위는 더욱 불타올랐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시민들이 모인 모스크바의 볼로트나야 광장에서 이름을 따 '볼로트나야 시위'로도 알려진 이 사건은 푸틴이 정권을 잡은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반대 시위였다.

이에 대해 푸틴은 미국이 이러한 반대 집회를 조직하고 장려하고 지시했다고 믿으면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을 비난했다.

푸틴은 해당 사건을 이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으며 서방 세계가 직접 자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상 전쟁 중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2020~2021년: 코로나19로 인한 고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자 푸틴은 자신을 고립하기 시작했다. 다른 독재자들의 사례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의 강력한 고립이었다.

푸틴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감시 속에 2주간 격리해야 했으며, 이후 세균을 죽이는 자외선과 소독제로 가득 차 시야조차 뿌연 복도를 통과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는 정치적 동지와 조언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어 소수의 '예스맨'과 강경파만 곁에 있게 됐다.

다른 의견이나 대안에 거의 노출되지 못한 상태로, 심지어 자신이 지배하는 국가를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한 상태로 푸틴은 자신의 모든 가정은 옳으며 편견은 정당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푸틴의 고립된 환경과 굳어진 편견은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의 토대가 된다.

출처 : BBC 코리아, 마크 갈레오티 교수

결국 지금의 비상식적인 아집과 서방의 물주먹 대응이 어쩌면 이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수단을 쓰든 이길때 까지 싸우면 결국 그 누구도 함부로 못한다는 망상을 심어 주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켜 그로 하여금 그를 숭배하고 따르는 자만이 그가 그리는 허황된 승리후의 러시아의 영광 재현위에 머무를 수 있다는 측근에 대한 가스라이팅을 하게 만든 것은 아닐지 모를 일이다.

결국 한 개인의 그릇된 승리에 대한 집착과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중립 및 억제가 없었기에,

볼품없었던 소년이 었던 그로 하여금 그의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무고한 인명을 본인 마음대로 본인의 의지에따라 의미없는 살상의 도구로 전락시켜 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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